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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활동

최윤덕장상 묘

by 늘푸른창원 2023. 2. 9.

창원시의회 창원 더 알기 시티투어

 

 

최윤덕장상 묘

 

경상남도 기념물 121호 인 최윤덕장군의 묘는

북면 대산리 사리실 마을 뒷산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최윤덕 장군의 묘가 있는  사리실마을은

 

도둑이 없어 대문이 없이도 편안히 사는 마을을 이라 합니다(위, 아래 사진 )

먼저 최윤덕 장군의 아버지 신도비 새워져 있습니다

신도비는임금이나 종이품 이상 벼슬아치의 무덤 앞이나

근처 길목에 죽은 사람의 업적을 기르는 벼슬을 말합니다.

 

 

 

 

최윤덕 장군 아버지 최운해 장군과 어머니 정경부인 창원이씨의 합장묘 (1)

 

 

최윤덕 장군 아버지 최운해 장군과 어머니 정경부인 창원이씨의 합장묘 (2)

 

 

 

 

부인의 묘에서 조금 떨어진 아래는 정경부인 안동권씨의 묘가 있습니다

최윤덕 장군은 여섯 살에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 최운해 장군 역시 변방에 오래 머무를 수 밖에

없게 되어 안동권씨의 손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다음

조금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윤덕장군의 묘 바로 뒤에 정경부인 성주도씨라 새겨진 묘비가 세워져 있고

정경부인은 조선시대 문. 무 관의 처에게 그 남편의품계에 따라 주던 최고의 봉작이라고 합니다.

 

 

 

바로 아래

최윤덕장상 묘 가 있습니다

 

 

 

 

 

 

 

출생-사망 : 1376 ~ 1445
본관 : 통천(通川)
자 : 백수(伯修), 여화(汝和)
호 : 임곡(霖谷)
시호 : 정렬(貞烈)
출생지 : 경남 창원
주요 업적 : 대마도 정벌, 읍성 축조, 4군 설치
시대 : 조선 시대(세종

 

 

장군은 창원 출신의 조선 전기 무관으로, 좌의정에 오른 위인이다.

세종이 “윤덕은 나를 만나면 반드시 성을 쌓은 것을 말한다.”라고 할 정도로

그는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의 하삼도(下三道) 연안과 동북,

서북 양도(兩道)의 북방 변경을 방어하는 방책으로 축성을 쌓은 데 적극적이었다.

 

최윤덕은 판서, 우의정, 좌의정 등 높은 벼슬자리에 있으면서도

변방으로 내려가 성을 쌓았다. 이리하여 그에게 축성대감이란 별명이 붙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항은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종종 확인할 수 있다.

최윤덕의 생가지는 정식 발굴, 조사된 적은 없지만,

역사적 인물이 탄생한 곳이라는 데 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2015년 7월 6일